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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 초소 터. (2022.11.12. 촬영)
관음사 초소 터. (2022.11.12. 촬영)

관음사 주둔지

  • 제주4·3유적지 안내판이 설치된 유적지
  • 무장대와 군경토벌대 간의 전투로 한때 전소되었던 절
  • 4·3의 총체성을 보여주는 복합유적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

<4·3유적지 시민 안내판>

관음사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을 지나기 전 오른쪽을 보면 4·3 유적지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을 따라 가면 4·3당시 무장대와 토벌대가 주둔했던 주둔지 터를 찾을 수 있다.

1909년 창건된 관음사는 무장대들의 근거지인 어승생악과 가까워 4·3 당시 여러 고초를 겪었다. 한때 관음사 주변지역은 토벌대들이 접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장대의 세력이 강했다. 관음사 내에는 이들이 은신했던 유적이 산재해 있다.

한라산의 경계인 관음사는 무장대가 숨울 곳이 많아 주요활동지였으며, 1949년 2월 토벌대와 무장대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법당을 비롯한 8동의 전각이 전소되었다. 1949년 3월부터 잔여 무장대 토벌을 위한 2연대의 작전이 강화되면서 관음사에는 제2연대 제2대대 병력이 관음사에 주둔하며 1949년 5월 철수할 때까지 한라산에 있는 무장대를 토벌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뿐만아니라 경계초소, 숙영지, 무기고, 피난지, 진지동굴 등 당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또한 관음사 일대에는 아라동과 오라동 주민들이 토벌을 피해 산으로 숨어들어간 후 피난생활을 했던 흔적과 질그릇 파편등이 남아있다. 관음사는 이후 1968년 복원되어 현재에 이른다.

한편 제주불교의 승려 '이일선'은 제주도민주주의민족전선 설립과 3·1기념대회 행사 준비를 주도하였으며, 승려 '이세진'은 무장대 지도부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참조

  • 제주연구원 자료
  • 제주다크투어<제주다크투어 유적지 국·영문 안내판 조사 보고서>
  • 제주특별자치도(2020), 제주4·3유적1 제주시편

<어디에 있나요?>

  •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산록북로 660

<시민지킴이단이 이곳을 조사 유적지로 선택한 이유>

  • 관음사에는 무장대와 토벌대의 주둔지 터가 보존되어 있고, 안내판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안내판에는 관음사가 제주4·3으로 입은 피해가 주로 적혀있고,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설립과 3·1기념대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승려 이일선, 무장대 지도부로 활동했던 승려 이세진 등 제주불교가 제주4·3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 제주다크투어와 4·3유적지 시민지킴이단 2기는 관음사의 4·3유적지 안내판 내용이 개선되길 바라며, 자세한 역사적 사실을 담은 안내판을 가지고 시민행동을 진행합니다.

<제주4·3과 관음사 주둔지 >

  • 관음사는 1909년 창건된 절로써, 제주 근대 불교의 중흥을 일으키고 제주의 30여 사찰을 관장하는 제주불교의 중심인 절이다. 제주불교는 제주4·3 이전의 제주사회 현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승려 이일선은 제주도민주주의민족전선의 설립과 3·1기념대회 행사 준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또 관음사의 이세진 스님은 무장대 지도부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제주 사회의 현안에 깊숙히 참여했기 때문에 4·3으로 인한 피해는 불가피했다고 할 수 있다.
  • 제주4·3 발발 이후 관음사 일대 아미봉은 무장대의 은신처였다. 관음사는 무장대 도당 사령부의 거점으로 활용되었고, 관음사의 이세진 스님이 무장대에서 함께 활동하는 등 관음사는 무장대의 주둔지가 되었다. 관음사 일대에서 무장대와 스님들이 함께 거주했다고 하는데, 종교 공간, 무장대의 영역으로 나누어서 생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관음사는 아라리 등 인근 주민들이 토벌대를 피해 입산하는 피난처가 되기도 하였다.
  • 1949년 1월 초, 토벌대와 미고문단들은 육해공군 통합작전으로 한라산 공습을 실시하였다. 관음사 일대는 이때부터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격전지가 되었다. 중산간 지대는 완전 초토화되고, 한라산 주변의 민가와 불교사찰들은 모두 불에 타버렸다. '관음사 전투'로 불리는 이 전투로 무장대는 막대한 타격을 입어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 1949년 2월 12일, 토벌대는 관음사에 미리 준비한 휘발유를 뿌리고 관음사 대웅전 등 8동의 전각에 불을 질렀다. 9연대 출신의 한 증언자는 '토벌작전 중 관음사에 들이닥친 지휘관이 관음사 승려들을 고문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하였다. (제주 4·3아카이브)
  • 1949년 3월부터 잔여 무장대 토벌을 위한 2연대의 작전이 강화되면서 2연대 2대대(대대장 이석봉 대위) 병력이 관음사에 주둔하기도 하였다. 2연대는 제주도 곳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토벌의 근거지로 삼았는데, 이곳 관음사는 4·3발발 당시부터 무장대의 주요 길목이었고 한 때 무장대의 본거지가 되었던 어승생 진지와 가까운 작전상 주요 지역이기 때문에 토벌대가 이 곳에 주둔한 것으로 보인다.(제주특별자치도(2020), 제주4·3유적1 제주시편)

<4·3유적지 시민지킴이단 활동>

  • 2022. 11. 12. 시민지킴이단 2기 2조 사전답사
  • 2022. 10~12. 유적지 자료조사
  • 2022. 12. 31. 시민지킴이단 2기 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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