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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을동 사진. (2022 .10. 13. 촬영)
곤을동 사진. (2022 .10. 13. 촬영)

빼앗긴 마을 곤을동

  • 제주4·3유적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 유적지
  • 당시 마을 터 형태가 남아있어 꼭 보존되었으면 하는 4·3 유적지
  • '진압군'에 의해 빼앗긴, 지도에서 사라진 마을

<4·3유적지 시민 안내판>

현재의 제주시 화북1동 서쪽 바닷가에 있던 마을인 곤을동(또는 곤흘동)은 항상 물이 고여있는 땅이라는 데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 곤을동은 고려 시대에 설촌되어 7백 년이 넘은 매우 유서 깊은 마을이었다.

그러나 제주4·3 와중인 1949년 1월 4일과 1월 5일 양일간 약 70여 호로 이루어졌던 곤을동은 불에 타 폐동이 되었다. 1949년 1월 4일 오후 3~4시쯤 군인 1개 소대 40여 명의 군인이 곤을동을 포위하였다. 마을로 들어선 군인들은 곤을동 집들을 수색하고 돌아다니며, 영문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을 전부 모이게 하고는 나이가 젊은 사람 10여 명을 골라내어 바닷가로 데리고 가서 학살하고 곤을동을 불태웠다.

다음날인 1월 5일에도 학살이 이어졌는데, 화북국민학교에 가두었던 주민 중 젊은이 12명을 모아 화북동 동쪽 바닷가인 '모살불'에서 학살했다. 이어 곤을동의 남아있는 집들도 모두 불태워져, 곤을동의 자취는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곤을동에서 살아남은 주민들은 주변마을로 옮겨졌다. 곤을동은 그 뒤로 복원되지 못하고, 토벌대에 의해 희생된 '빼앗긴 마을'이 되고 말았다.

참조

<어디에 있나요?>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일동 4416
  • 찾아가려면: 화북동 동제원길/오현고등학교 옆 동쪽 길을 따라 화북동으로 내려가다 비석거리에서 왼쪽길로 150m정도 내려가면 곤을동 비석과 곤을동 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시민지킴이단이 이곳을 조사 유적지로 선택한 이유>

  • 곤을동은 제주4·3으로 초토화되고 터만 남아 있는 마을 중 하나입니다. 곤을동에는 표지석과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세운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마을 흔적이 잘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 제주다크투어와 4·3유적지 시민지킴이단 2기는 4·3유적지 안내판이 있지만 이에 더불어 앞으로도 잘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시민 안내판>을 만들어 시민행동을 진행합니다.

<제주4·3과 곤을동>

  • 곤을동은 화북1동 서쪽에 속해 있었던 바닷가 마을이다. 화북1구 주민들은 2연대가 주둔하기 시작한 1949년 벽두부터 큰 희생을 치렀다. 1949년 1월 3일 무장대가 이웃마을 삼양리를 습격하자 화북지서에서는 민보단을 동원해 사태에 대비했다. 그런데 출동했던 민보단장이 화북리에서 희생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토벌대는 즉각 학살극을 벌였다. ( 「4·3은 말한다」1999.08.13. 제454회 연재 참조)
  • 마을이 형성된 지 700년이 넘는 유서깊은 해안마을이었던 곤을동 또한 화북1동을 덮친 재난을 피해가진 못했다. 1월 4일 오후3~4시쯤 군인 1개 소대 40여명의 군인들이 곤을동을 포위하고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사람들을 전부 모이게 하고는 젊은 사람 10여 명을 골라내어 곤을동 바닷가로 데리고 가서 죽였다. 마을 주민들은 화북국민학교에 가두고, 이어 곤을동에 불을 질렀다. 이튿날인 1월 5일에는 화북국민학교에 가두었던 주민들 중 젊은이들 12명을 모아 화북동 동쪽 바닷가 '모살불'에서 학살하였다. 이들은 주민들의 학살에 그치지 않고 곤을동의 남아 있는 집들도 모두 불태웠다. 67호의 작지 않은 마을이 이틀새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전혀 죄 없는 사람들을 다 죽여 놨지. 자기 이름도 못 쓰는 사람들을 다 죽였어. 군인들이 와서 집에 있는 사람들 잡아놓고 물가에 세워 놓고 죽였주. 죽인 날부터 불붙이기 시작헌거라. 석유병을 집안 기둥에 항상 걸어놨었어. 석유병 꺼내서 촐 한 묶음이나 조짚, 보릿대에 불을 붙여 집을 태웠어. 돼지도 다 불타서 죽고, 소도 불타서 죽고, 초가집이니까 쉽게 불이 붙었주. 화북에서 제일 피해가 커. 곤을은 따로 떨어진 곳이니까 불을 붙여 버렸지. 사람을 못살게 해버린 거지. 원원! 시뻘겋게 집 하나도 없어. 하늘이 시뻘겋게 됐었지. 사람도 죽고 집도 불붙고 그러니까 그곳에 사람이 없어져 버린 거라."
- 안명호, 증언 당시 67세
제주4·3평화재단, <4·3 아카이브>
  • 곤을동은 해안가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4·3의 광풍을 피해가지 못한 대표적인 마을 중 한곳이다. 곤을동이 해안마을인데도 폐동시킬 정도로 토벌해야 했던 이유는 명시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생존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일주도로에서 경찰차가 지날 때 무장대가 매복 습격하여 병사들 중 한 명만 남겨놓고 궤멸시켰다. 이 때 살아남은 병사가 당시 산사람이 곤을마을로 뛰어갔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이 습격에 대한 보복으로 곤을동에서 학살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CBS 유적지 라디오<흔적에서 교훈으로>, 2021. 07. 10. 5시 방송)

<4·3유적지 시민지킴이단 활동>

  • 2022. 10. 13. 시민지킴이단 2기 1조 사전답사
  • 2022. 10~12. 유적지 자료조사
  • 2022. 12. 17. 시민지킴이단 2기 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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