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유적지
4·3 유적지 목록
수악주둔소
이 곳 위치가 수악(물오름, 水岳)의 동남쪽에 만들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신례천과 하례천 계곡 사이에 있는 동산에 위치해 있다. 수악은 제주시 조천읍과 남원읍 경계에 있는 원추형 측화산(고도 472m)이다.주둔소는 내성과 외성으로 구성된 이중 구조이며, 외성이 일대를 둘러싸고 있다. 외성의 바깥쪽 높이는 3.5m, 내벽은 2m 정도이 ...
시오름 주둔소
서호리 시오름 경찰 주둔소는 1950년대 초반에 설치됐다. 이 시기 지역 주민들과 인민유격대의 연결을 차단하기 위해 주요 산길마다 25개의 주둔소가 만들어졌다. 시오름주둔소 성은 서호리 주민뿐만 아니라 호근리·강정리·법환리 등지의 주민이 총동원되어 한 달 만에 쌓았다고 한다.삼각형 모양의 주둔소는 한 면의 길이 40여m, 전체 둘레 120m 정도이다 ...
영남동 옛터
영남동의 영주산 남쪽에 위치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예로부터 한라산을 영주산이라고도 불렀는데, 영주산(瀛洲山)의 영(瀛)과 남쪽을 뜻하는 남(南)을 결합하여 ‘영남(瀛南)’이라 하였다. ‘염둔·염돈’이라고도 했다.해발 5백 m 고지에 위치한 영남동은 4·3 사건 당시 리 단위로 독립된 마을이었다. 16가호의 주민들은 옛부터 화전을 일궈 보리 ...
정방폭포
서귀리는 서귀면뿐만 아니라 산남 지방의 중심지였다. 면사무소와 남제주군청이 있었고 서귀포경찰서도 서귀리에 있었다. 때문에 토벌이 강화되면서 토벌대의 주요 거점지가 되었다. 서귀면사무소에 대대본부(2연대 1대대)가 설치되고, 군부대의 수용소는 수감자로 넘쳐났다. 특히 군부대 정보과에서 주민들을 고문 취조했던 농회창고는 악명이 높았으며, 정방폭포에서는 ...
중문신사터
'신사터'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신사를 모셨던 곳이라 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진 곳이었다. 해방이 되자 지역주민들은 제일 먼저 이 곳을 때려 부쉈다.중문 신사터는 4·3 당시 토벌대가 주민들을 일상적으로 학살했던 장소이다. 특히, 1948년 12월 17일 제2연대와 교체를 앞둔 제9연대 토벌대는 '마지막 토벌작전' ...
중문지서 옛터
중문지서는 4·3이 발발한 이후 인근지역의 토벌대의 총본부 열학을 했다.육지에서 온 응원경찰대, 서북청년단, 군인들이 지서를 중심으로 마을 곳곳에 주둔해 토벌을 벌였다.앞서 1947년 3월에는 3·1절 발포사건으로 일어난 3·10 총파업에 당시 중문지서 소속 경찰관 6명 전원이 동참해 사직서를 제출하는 일이 있었고, 이어 인원을 메우기 위해 온 응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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