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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MBC 라디오 제주시대, 격주 화요일 18:05 만나는 <드라마틱한 제주이야기>에 제주다크투어 대표가 출연합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시대, 격주 화요일 18:05 만나는 <드라마틱한 제주이야기>에 제주다크투어 대표가 출연합니다.
제주다크투어에서 4월 28일부터 격주 화요일 18시 5분 제주MBC ‘라디오 제주시대’를 통해 제주4·3 역사를 소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주다크투어는 <드라마틱한 제주이야기>에서 유명 관광지, 소설이나 영화를 중심으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제주4·3 역사를 소개합니다. 4·3역사에 대한 내용은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와 <4·3은 말한다>, <제주4·3유적>에 나오는 내용을 중심으로 전달하는 것이고, 현지 유적지 관리실태에 대한 내용은 제주다크투어에서 직접 발행한 <다시 쓰는 제주 100년의 역사> 제주지역 다크투어 유적지 국·영문 안내판 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내용을 정리해 전달해드립니다.
많은 청취 부탁드리며, 격주 화요일 18시 5분 라디오 주파수 FM 제주시 97.9MHz, 서귀포 97.1MHz에서 만나요!

Q.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나요?
A. 오늘은 제주4·3과 관련한 습지와 동굴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다가오는 6월 27일 토요일에 생태전문가인 고제량 선생님과 함께 <굴, 습지 그리고 4·3 다크투어>라는 일일기행을 진행하는데요. 제주4·3 역사에서 동굴과 습지가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역사가 있는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Q. 흥미로운데요. 27일에는 어떤 지역의 굴과 습지를 탐방하는 건가요?
A. 선흘리 일대의 굴과 습지를 가는데요. 제주 조천읍 선흘리의 ‘동백동산 습지(선흘곶자왈)’는 오늘날 람사르 습지이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숲이지만, 1948년 4·3 사건 당시에는 마을 전체가 불타버린 후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숨어들었던 처절한 피난처이자 연쇄 학살의 비극이 서린 현장입니다.

Q. 연쇄 학살이요?
A. 네, 1948년 11월 21일, 당시 이승만 정부의 토벌대에 의해 초토화 작전으로 선흘리 마을 전체가 불탔습니다. 주민들은 소개령에 따라 해안가 마을로 내려가기도 했지만, 선흘리와 같은 중산간 마을 거주자들은 해안가 마을로 내려가더라고 도피자가족으로 분류되면 토벌대의 주요한 학살대상이 되다보니 산 속 동굴로 숨는 주민들도 많았습니다.
그중에 선흘리 일대 주민들이 숨어지냈던 천연 용암동굴인 도틀굴, 목시물굴, 벵뒤굴이 4·3역사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당시 함덕리의 9연대는 11월 25일 선흘곶 일대를 포위해가던 중 굴 밖에 나와 있던 주민 한 명을 붙잡아 협박했고, 결국 도틀굴에 숨어있던 선흘 주민들을 찾아냈습니다. 26일인 다음날에는 목시물굴에서 40여 명의 주민을, 그 27일에는 벵뒤굴에서 주민 14명을 학살해 이른바 연쇄 학살이 있었습니다.

Q. 연쇄적인 것도 놀라운데요. 많은 주민들이 희생되었나요?
A. 제주4·3연구소에 따르면, 25일 발견된 도틀굴에는 젊은 청년 25명가량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토벌대는 굴로 수류탄을 던졌고, 몇 명의 청년이 군인들 총격에 굴 안에서 사망했습니다. 살아남은 청년들은 중 일부는 굴 인근에서 바로 총살됐고, 나머지는 함덕 군주둔지로 끌려갔습니다. 함덕으로 끌려간 도틀굴 생존자들이 무자비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선흘리 주민 150~200여 명이 대거 숨어있던 목시물굴의 위치를 실토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인 11월 26일 아침, 토벌대는 박격포를 쏘며 목시물굴로 들이닥쳤습니다. 그들은 굴 안으로 수류탄을 마구 투척하며 주민들에게 밖으로 나올 것을 종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녀자와 어린아이, 노인 등 무고한 민간인 40여 명이 무참히 학살당했습니다. 토벌대는 학살 후 시신에 휘발유를 뿌려 불태우는 잔혹함까지 보였습니다. 그리고 굴의 위치를 알려 주기 위해 데려갔던 주민마저 총살했습니다. 토벌대는 고문과 추적을 이어가며 11월 27일 벵뒤굴마저 찾아내고야 말았습니다. 동굴 내부가 워낙 미로 같아 주민들은 깊숙이 숨었으나, 결국 이곳에서도 주민 14명이 발견되어 차가운 동굴 바닥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Q. 정말 안타깝네요. 그런데 이번 투어에는 동굴뿐 아니라, 습지도 찾아가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동굴은 학살터이기 전에 주민들의 몸을 숨겨준 은신처였습니다. 당시 주민들은 짧게는 하루, 길게는 30일 넘게 굴에 숨어지내야 했는데요. 인간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게 물입니다. 특히 해안마을도 마찬가지지만, 중산간 일대에는 물이 마을형성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공교롭게도 연쇄 학살이 발생한 세 곳의 동굴 근처에는 크고 작은 습지가 그 역할을 대신했던 것 같습니다.

Q, 어떤 습지들이 있나요?
A. 첫 학살이 벌어진 도틀굴 가까이에는 ‘도틀물’이라는 습지가 있습니다. 웅덩이 주변이 돌담으로 둘러쌓여 주민들에 의해 관리되던 곳으로 추측되는데요. 지금은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물처럼 보이지만, 당시는 물이 워낙 귀했기 때문에 토벌대를 피해 굴에 숨었던 주민들에게는 생명수였겠죠.
목시물굴은 굴 이름에서 알겠지만 굴 이름 자체가 ‘목시물’이라는 습지로부터 붙혀진 것입니다. 그리고 근처에는 선흘리 4·3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져 있는데, 바로 옆에 ‘반못’이라는 습지가 있습니다. 큰 규모라 주민들의 식수이자 우마용으로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이곳 옆 궤우물에서도 토벌대가 근처 굴에서 잡은 주민들을 학살하기도 했습니다. 벵뒤굴도 근처에 여러 습지가 있지만 역시나 근처에 ‘벵듸물’이라는 자연습지가 있습니다.

Q. 방금 말씀해주신 동굴이나 습지는 들어가 보거나, 가까이 접근할 수 있나요?
A. 제주도에 많은 습지와 용암동굴들이 있지만 개발 과정에서 맺꿔지거나 파괴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다행이도 오늘 소개한 습지와 동굴은 모두 보존되어 있고, 일부는 혼자서도 찾아가기 어렵지 않습니다. 동굴 대부분은 안전이나 보존의 이유로 막혀 있습니다. 그래서 입구까지만 접근할 수 있구요. 습지는 가까이까지 접근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특히, 도틀굴과 도틀물이 있는 일대는 ‘동백동산’이라는 이름으로 제주생태관광의 중심이기도 하고, 국제적으로 생태적 가치가 높은 습지인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먼물깍’이라는 습지도 포함하고 있어 2시간 정도 가벼운 트레킹을 한다고 생각하고 방문하셔도 좋습니다.

Q. 이런 곳을 방문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요?
A. 안전을 위해 굴에는 전문가와 동행하지 않는 이상 들어가지 않는게 좋습니다. 또한 굴과 습지 일대는 모기가 많기 때문에 대비할 필요가 있구요. 동굴과 습지 모두 인간외에 다른 동식물들에게 매우 중요한 공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소음을 내거나 밟은 조명을 비추는 등의 행동은 자제해야 합니다.

Q. 선흘 외에 다른 지역에도 4·3 관련 동굴 유적지도 소개해주세요.
A. 다랑쉬굴, 큰넓궤, 빌레못동굴 등등 너무 많은데요. 먼저 다랑쉬굴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다랑쉬굴은 1991년 12월에 ‘제주4·3연구소’ 연구원들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까지도 4·3에 대한 엄중한 사회현실을 감안해서 바로 공개하지는 못하고 전문학자, 언론사, 의사, 법률가들의 자문을 얻어 이듬해인 1992년 4월 1일에 비로소 대중들에게 공개가 되었습니다. 11구의 유해가 나왔는데요. 특이하게 모두 반듯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Q. 아까 동굴이 피난처이자 학살터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유해가 반듯하게 누워 있었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좀 더 자세히 알려 주세요.
A. 세화리에 위치한 다랑쉬굴은 1948년 하도리, 종달리 주민 11명이 피신해 살다가 발각되어 희생당한 곳입니다. 군경토벌대는 이 굴을 발견하고 주민들에게 나올 것을 종용했으나 나오지 않자 굴 입구에 불을 피워 연기를 불어 넣어 고통스럽게 학살했어요. 당시 다랑쉬굴에서 같이 살았던 채정옥(1923년생)씨는 사건이 있었던 12월 18일에는 다른 굴에 가 있어서 희생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사건 발생 다음 날 일행 2명과 함께 다랑쉬굴에 와보니 입구에 불을 피웠던 흔적들이 있었고, 굴속에는 그때까지도 연기가 가득했다고 해요. 연기에 질식된 희생자들은 고통을 참지 못한 듯 돌 틈이나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숨져 있었고 눈, 코, 귀에서 피가 나있는 등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급한 대로 가족단위로 시신들을 나란히 눕히고 나왔다고 해요. 나중에 유족들에게 알려주려고 했는데, 굴 입구를 찾지 못해서 유가족들에게도 말 못하고 학살이 일어난지 44년 만에야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Q. 당시 이 발견은 전국 방송을 통해 다랑쉬굴의 유해 발굴 현장이 전파를 탔었죠. 온 국민에게 거대한 충격을 안긴 뉴스였습니다. 발굴한 유해는 어떻게 잘 수습이 되었나요?
A. 유해 발견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당시 문민정부였음에도 보안당국은 희생자를 ‘무장대’라며 “토벌대에 발각되자 집단 자살한 것”이라는 등 진실을 왜곡하려 시도했습니다. 4·3의 참상이 사회적 이슈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유족들을 회유·압박 한 결과 유해는 양지바른 곳에 안장되지 못한 채, 발굴 45일 만에 서둘러 화장되어 제주 바다에 뿌려졌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굴 입구를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완전히 메워 봉쇄해 버렸죠.

Q. 기가막힌 일입니다. 유가족들의 상심이 너무 컸을 것 같아요.
A. 맞습니다. 유족들은 44년 동안 가족의 생사를 몰라 가묘(시신 없는 헛묘)를 만들어 제사를 지내왔습니다. 다랑쉬굴 유해가 발견되었을 때 마침내 진짜 묘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으나, 당국의 방해로 뼛가루마저 바다로 사라지면서 현재도 유족들은 가족의 유골이 안치된 무덤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분명 44년 전의 일인데도 제주4·3이 현재 진행형이라 불리는 방점이 된 역사였습니다.

Q. 다랑쉬굴은 현재 어떤 모습인가요?
A. 시멘트 타설 흔적은 철거되었지만, 내부 유적 보존과 부식 방지, 안전사고 예방 등의 이유로 굴 입구는 거대한 바윗덩이들로 굳게 막혀 있습니다. 다랑쉬굴 일대를 제주도가 매입하여 작년에 진입로를 정비하고, 주차장과 위령·추모 공간을 조성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제주4·3평화기념관 ‘다랑쉬 특별전시관’에 동굴 현장을 발굴 당시 실물 크기로 그대로 재현해 놓았습니다. 긴박했던 피난 생활과 당시의 학살 상황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 번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Q. 다른 굴 이야기도 해주세요.
A. 동광리 큰넓궤는 1948년 11월 중순 마을이 초토화 된 이후 동광 주민들이 2개월 가량 집단적으로 은신 생활을 했던 곳입니다. 4·3역사에서 동굴은 학살터로 기록된 역사가 대부분인데, 이곳만큼은 은신처로 남아있는 곳입니다.
당시 이 굴에는 120여 명이 숨어 살았어요. 1949년 초 주민들은 토벌대의 집요한 추적 끝에 발각되고 말았고 곧 토벌대는 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청년들은 노인과 어린아이들을 굴 안으로 대피시킨 후 이불 등 솜들을 전부 모아 고춧가루와 함께 쌓아 놓고 불을 붙인 후 키를 이용하여 매운 연기가 밖으로 나가도록 열심히 부쳤어요. 토벌대는 굴속에서 나오는 매운 연기 때문에 굴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총만 난사했죠. 그러다 해가 지려고하자 토벌대는 굴 입구에 돌을 쌓아 놓고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게 막은 다음 철수했어요. 토벌대가 간 후 근처에 숨어있던 청년들이 나타나 굴 입구에 쌓여 있는 돌을 치우고 주민들을 밖으로 나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다른 곳으로 피하도록 했습니다.

Q.마을도 불타서 없고 2달 정도 지냈던 굴에도 있을 수 없고 이제 또 어디로 발길을 옮겨야 했을까요?
A. 네, 당시 굴 속에는 동광리 마을 중 ‘삼밭구석’ 사람들과 ‘무등이왓’ 주민들이 많았습니다. 이 두마을 사람들의 운명은 이후 극명하게 갈라졌는데요. 삼밭구석 주민들은 한라산 영실 부근 볼레오름 지경에서 토벌대에 총살되거나 잡혀서 서귀포로 이송돼죠. 그 후 이들 중 40여 명이 정방폭포 부근에서 학살당했습니다. 반면 무등이왓 주민들은 마을 근처 오름 동굴에 숨었다가 이후 토벌대가 뿌린 선무공작 전단지를 보고 자수하여 서귀항 근처 단추공장 등에 수용되었다가 풀려났습니다. 지금도 동광리에 가면 홍춘호 할머니를 증언자로 만날 수 있는데요. 당시 가족들과 무등이왓에 살던 10살 어린이였던 홍할머니를 통해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 큰넓궤, 단추공장 수용소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습니다.

Q. 오늘 4·3유적지로서 굴과 습지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역사적으로도 매우 가치 있지만 수자원이나 생물다양성 보존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주다크투어에서 오는 토요일, 27일에 일일투어를 진행한다고 하니까요. 관심있는 분들은 홈페이지나 전화를 통해서 참여해보시면 좋겠습니다.
A. 제주다크투어에서는 월간 일일기행으로 ‘굴, 습지 그리고 4·3 다크투어’를 진행합니다. 고제량 생태전문가의 해설로 이번주 토요일 27일 오전에 동백동산습지센터에서 모여 인근 습지와 굴을 둘러보는 시간을 마련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제주다크투어를 검색해주세요.


참고자료
양조훈 기자, (2011.05.26.) "입구에 불피워 질식사시킨 것", 제민일보, https://www.je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64056
이경주 기자(2022.03.31.) 다랑쉬굴 발굴 30년, 못다 한 그날의 이야기, KBS,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429287
제주특별자치도, 제주4·3연구소, <제주4·3유적1:시편>, 2021 , 제주:도서출판 각, 599-621쪽
좌동철 기자(2024.03.31.), [제주4.3 76주년] 1992년 나온 다랑쉬굴의 참상 "묻었나, 묻혔나", 제주일보, https://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9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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