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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바람의 섬이라 불리지만, 그 바람 속에는 단순한 푸르름과 휴양의 낭만만 담겨 있지 않았다.
우리가 밟은 땅은 그 자체로 전쟁과 분단, 희생과 저항의 기억을 품은 거대한 증언자였다.

이번 순례는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분단의 땅에서 억울하게 흘린 피와 눈물에 해원(解寃)을 드리고자 떠난 여정이었다.

#알뜨르 비행장, 정뜨르 비행

2025.08.28. 제주국제공항. 청년지도력 소통과대안 제공.
2025.08.28. 제주국제공항. 청년지도력 소통과대안 제공.

우리가 내린 제주공항은 처음엔 단순한 활주로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자리는 일본군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전초기지로 삼았던 정뜨르비행장이었다. 제주도 내에는 일본군이 건설한 비행장이 몇군데 존재하며, 우리는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공항)과 알뜨르 비행장을 방문하고 왔다. 매일 몇 만 명씩 찾아오는 비행기 소리 뒤에는, 수많은 조신인 강제동원과 식민지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겹쳐 있던 것이다.

#제주4·3

해방 이후에도 제주가 품은 운명은 달라지지 않았다. 냉전의 틀을 거부하며 ‘하나의 섬, 분열 없는 땅’을 꿈꾸었던 이들은 곧 “데드 아일랜드”라 불리며 빨갱이로 몰렸다.

1947년 3월 1일, 기념식에서 경찰의 발포로 시작된 민간인 희생은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를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이후 수년간 국가 권력은 제주 전역을 “초토화 작전”으로 몰아붙였고, 산에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심지어 아무 이유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전체 도민의 10분의 1이 넘는 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마을은 불타 사라졌다.

제주 4·3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었다. 국가폭력이 일상 속에 파고든 뼈아픈 경험이었고, 그 상처는 오랫동안 말조차 할 수 없는 금기의 역사가 되었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이제야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수많은 시신은 땅과 바다 속에 잠들어 있다. 제주 땅은 지금도 해원을 기다리는 무덤이며, 분단과 냉전의 비극을 가장 치열하게 보여주는 장소이다.

제주4·3유적지 지도 '4·3길을 걷다', 제주4·3기념사업위 제공
제주4·3유적지 지도 '4·3길을 걷다', 제주4·3기념사업위 제공

#순례적 일상

제주 순례는 관광이 아니었다. 그것은 과거의 피와 현재의 투쟁, 그리고 미래를 잇는 발자국이었다. 우리는 이 땅의 큰 아픔을 마주했다. 그러나 그 아픔은 너무 크고 무겁기에, 일상의 삶과는 때로 괴리감을 만들기도 한다. 큰 고통 앞에서 우리의 작은 고통은 상대화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여길 수만은 없다. 오히려 순례적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금 곁에 있는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훈련이 필요하다. 바로 옆의 사람, 가장 가까운 이의 신음과 바람에 마음을 내어줄 때, 우리는 제주에서 배운 평화를 일상으로 옮겨올 수 있다.
나는 무딘 남자로 자라와서 이 부분이 여전히 약하다. 그러나 이번 순례는 내게도 다짐을 남겼다. 보다 섬세하게 곁에 있는 생명들과 만나고, 작은 아픔에도 귀 기울이는 삶. 그것이야말로 제주의 큰 아픔 앞에서 우리가 응답할 수 있는 순례적 일상의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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