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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 빌레못 동굴 앞 안내판
애월 빌레못 동굴 앞 안내판

비가 오는 8월의 어느 날, 제주다크투어는 애월읍에 있는 빌레못 동굴에 찾아가 보았습니다. 1949년 1월 16일, 토벌대와 민보단이 합동으로 대대적인 수색작전을 펼쳐 발각된 동굴. 토벌대는 굴속에 숨어 있던 강규남의 가족(어머니, 아내, 아들, 딸, 누이), 송제영, 강성수, 양신하, 양승진, 양세옥 등 29명을 굴 입구 근처에서 학살했다고 합니다. 이 때 희생자는 주로 어음, 납읍, 장전 사람들로 시신처리는 강규남이 산에 피해 있다가 임시로 흙을 덮어주고, 다음 해에 본격적으로 수습했습니다. 

당시 토벌대가 빌레못굴에서 어린 남자아이의 발을 잡고 휘둘러 돌에 메쳐 죽였다고 하고 그 아이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동굴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해서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총 길이가 11.749m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용암 동굴이어서 들어갔다가도 길을 잃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해요. 

빌레못 동굴 입구
빌레못 동굴 입구

이 날 제주다크투어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빌레못굴에 도착할 때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대부분의 4·3 유적지가 그렇듯이 여기도 표지판만 가지고 찾아가기는 어려워 차에서 내리자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세갈래 길이 눈 앞에 보이더라고요. 굴이니 당연히 숲 속에 있을꺼라 생각하고 숲쪽으로 조금 발걸음을 옮기는데 비가 더욱 세차게 내렸습니다. 만약 잘못 들어가면 숲 속에서 고생하겠다 싶어 걸음을 멈추고 지도를 다시 확인하고 뒤를 살짝 돌면서 다른 길쪽을 보는데 거기에 빌레못굴 안내판이 딱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정말, 너무너무 신기하게도. 딱 7발자국 걸어서 빌레못굴 앞에 가니까 비가 딱 멈추고 해가 쨍쨍 났습니다. 마치 저희가 길 잘못 들어갈까봐 3만 영혼들이 제대로 찾아가라고 길 알려주는 것처럼 말이예요. 

당시 유일하게 생존하신 양태병 선생님의 증언을 나눠봅니다.

소개령이 내려지자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이웃마을 납읍리로 갔습니다. 거기서는 매일 밤 보초를 세웠는데 내게는 보초서라는 명령이 없는 겁니다. 이상해 물어 보니 ‘너는 민애청에 가입한 놈이니 보초 설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불안해하던 중 일주일 만에 납읍리에도 소개령이 내려지자 다시 애월리로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내게는 보초 서라는 말이 없어요. 그리고 민애청 가입자는 곧 총살될 거라는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난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둘이서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이런저런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민애청 가입자라고 하니 놀랐습니다. 누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명단인 모양인데 그런 식이면 안 걸릴 청년이 없었지요. 아무튼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순 없었기에 도망쳤습니다. 그 무렵 알게 된 빌레못굴로 숨어들었는데 그곳에는 납읍리 주민 28명이 있었고, 우리 마을 사람으로는 강규남의 가족 5명(어머니, 아내, 아들, 딸, 누이), 송시영과 그의 처자, 양신하 등이 있었습니다. 입구가 좁고 은밀한 곳이라 모두들 안심했지만 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여차하면 숨을 만한 곳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요. 결국 굴이 발각됐습니다. 아마도 굴밖에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김 때문인 것 같습니다. 군·경 토벌대와 민보단원들이 굴 안으로 들어오자 급히 숨었지요. 그러나 토벌대가 ‘살려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유혹하는 바람에 모두들 나왔습니다. 굴속의 인원을 파악한 토벌대는 붙잡은 사람을 통해 내 이름을 부르며 나오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난 숨죽이고 있었지요. 토벌대는 사람들을 끌고 나가자마자 굴 입구에서 바로 학살했습니다. 강규남의 아들이나 송시영의 아들은 불과 서너살난 아이들이었는데 동네에서 소문날 정도로 예쁘고 잘난 아까운 아이들이었지요. 토벌대는 그 아이들의 다리를 잡아 바위에 메쳐 죽였습니다. 인간으로서 차마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분명히 학살자들은 그 죄로 곱게 죽지 못했을 겁니다. 한편 강규남의 아내는 두어살난 딸을 업은 채 도망쳤는데 나처럼 인근에 숨지 않고 더 깊숙이 들어갔다가 길을 잃어 빠져나오지 못한 채 굶어 죽었습니다. 굴은 너무도 크고 복잡해 잘못 들어가면 길을 잃게 됩니다. 이들의 시신은 후에 굴 탐사팀에 의해 발굴된 것으로 기억됩니다. (양태병, 98년 71세, 애월읍 어음리)
- 제민일보 1998. 10. 16.

군인이 2살 아들을 땅에 내려 찍었다.” 빌레못굴 이야기를 알고 있던 저희는 작년에 이 기사 제목을 보고 당연히 4·3 69주년 기사인줄 알았는데 링크를 열어보니 현재 진행 중인 학살, 미얀마 로힝야족의 증언이었습니다. 제주 4·3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더 많은 현재 진행형의 4·3과 제주다크투어가 연대해야 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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