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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은 지난 1월 13일 구좌읍 동복리와 김녕리의 제주4·3 유적지를 답사했습니다.  (방문지 : 동복리 장복밧→굴왓→비석거리 →김녕리 김녕공회당 앞밭→김녕농협 앞밭→김녕지서 옛터→김녕초등학교→부녀자 피신 민가 궤)
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은 지난 1월 13일 구좌읍 동복리와 김녕리의 제주4·3 유적지를 답사했습니다. (방문지 : 동복리 장복밧→굴왓→비석거리 →김녕리 김녕공회당 앞밭→김녕농협 앞밭→김녕지서 옛터→김녕초등학교→부녀자 피신 민가 궤)

동복리, 김녕리 제주4·3 유적지 지도

제주다크투어 활동가들이 2020년 1월 13일 방문한 구좌읍 동복리, 김녕리의 제주4·3 유적지입니다

오늘(1월 13일) 제주다크투어는 71년 전, 음력 십이월 열아흐렛날 오후의 그곳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후 4시경 군경 토벌대는 마을의 주민 모두를 속칭 ‘장복밭’에 집결시킨 후 남녀를 구분하여 남자 18세 이상 86명을 아무런 이유없이 무차별 ‘굴왓’ 1951-1번지 밭에서 총살시켰다.
그 후 토벌대는 마을로 내려와 주민이 살던 가옥을 불태웠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주민들을 무차별 총살시켰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간신히 김녕리 ‘공회당’으로 피신하여 있던 중 또다시 주민을 사상범으로 몰아 30여 명을 김녕리 근처에서 학살시켰다. 그로 인해 억울하게 학살된 주민의 숫자는 현재 4·3사건 사업소 기준 무려 136명에 이른다(중략)
- (동복리 4·3사건 희생자 추모기념비문 중 일부)
동복리 희생자 위령비
동복리 희생자 위령비

가는 길 차 안에서 몇 번이고 서로 소리 내어 읽습니다. 약속이나 한 듯이 한 사람이 읽고 나면 또 다른 사람이 같은 위치를 되뇌입니다.

“동복리를 가로지르는 알주도로변에 있는 ‘바람 타는 폭낭(팽나무를 가리키는 제주어)’ 바로 서쪽”

‘어, 어, 어, 저 나무는?’

‘울타리 모습이 사진과 다른데요…’

‘다시 돌아서 가 봐요’

장복밧을 찾아가는 길이 만만치 않습니다. 차의 속도를 줄여봅니다. 일주도로 위를 몇 번 가다 서다 반복하다 결국 못 찾고 목적지를 바꿉니다.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마음속에 물음표만 가득 안고 일주도로 안쪽 마을길로 들어왔습니다.

바로 그때,

‘혹시 여기 아닌가, 사진 속 건물인 것 같은데, 어, 어…’

그 한 마디에 차를 급히 세우고 길을 건너갑니다.

그렇게 일주도로를 몇 번이나 달리면서도 찾지 못했던 그 폭낭이 의연하게 서 있습니다. 사진 속 건물도 눈앞에 보이네요. 서둘러 도로명 주소를 적어둡니다. 찾고 나서 일까요. 비문의 글들이 그림으로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토벌대의 연설을 들으라며 강제로 집결시키고선 완만한 경사길을 따라 사람들을 끌고 올라갔습니다. 장복밧에서 50m 정도 걸어 올라가면 지금의 일주도로와 만납니다. 그 길을 건너면 바로 ‘굴왓’입니다. 도로변보다 낮아 골이 파인 곳에 있는 밭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 다다다다다다다…’

‘ 다다다다다다다…’

M-1소총과 기관단총을 밭둑에 걸어 놓고 학살을 벌인 굴왓, 광기에 치달은 그 현장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가만히 모아봅니다. 이날 이곳에서 무차별 학살당한 이는 86명입니다. 바로 옆 마을, 북촌에서 대학살을 저지르고 돌아가던 길에 군인들이 동복리에서 저지른 학살입니다.

다음은 비석거리로 향합니다. 차로 얼마나 갔을까요. 멀지 않은 곳에 멀리서도 팽나무 한 그루가 보입니다. 현재 비석거리는 일주동로가 확장되면서 이전해 이 곳에는 팽나무 한 그루만 남아 있습니다. 이곳은 1948년 12월, 일명 도피자 가족이라 하여 부인, 어머니, 아이들이 잡단 총살당한 장소입니다. 그뿐 아니라 토벌대가 무장대로 변장한 함정 토벌로 인한 희생도 있었습니다.

동복리 비석거리
동복리 비석거리

1분 거리 안에 놓인 죽음

1948년 12월부터 다음 해 1월에 걸친 집단광기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은 옆 마을 김녕으로 소개 당해 김녕 공회당에서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됩니다. 대부분 여성이었던 이들은 특히 서북청년단 출신 경찰들의 성폭력으로 인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의 날들을 보냅니다.

공회당 앞 밭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공회당에서 수용소 생활을 하던 주민들 중 몇몇은 도피자 가족으로 몰려 월정리 주둔2연대 2대대 11중대 군인들에 의해 총살됩니다. 이날 총성에 희생된 것으로 확인된 동복리 주민은 16명입니다. 현재는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증언에 따르면 새마을금고 건너편 밭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남쪽 방향으로 걸어서 1분도 채 안되는 곳에 또 다른 학살터가 있습니다. 바로 김녕농협 앞밭으로 1948년 12월 중순 당시 김녕국민학교 운동장에 집결된 덕천리 주민 중에 청년만 잡어내 집단총살한 장소입니다. 현재는 건물들도 많이 들어서서 그때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안쪽 구석에 조금 남은 밭담 만이 그때를 증언하는 듯 무심히 바라보는 것만 같습니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주어 떼어냅니다. 마음까지는 가져오지 못하겠습니다.

“너 계속 그러면 경찰 아저씨가 잡아간다”

어릴 적 울거나 떼쓰거나 할 때 다들 주위의 어른들한테 한 번씩 들어본 적 있지 않나요.

지금도 그럴진대 그 시절 경찰들의 위세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김녕농협이 있는 큰 길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서면 그 시절 김녕리와 인근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한 김녕지서 옛터가 있습니다.

4·3 초기부터 악명이 높았던 이곳은 1948년 10월 이후 서북청년단 20여 명이 근무하면서 인근 주민들을 고문, 학살한 장소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공회당앞밭, 농협앞밭 모두 김녕지서에서 걸어서 1분 거리 안에 있습니다. 이 짧은 거리가 얼마나 멀게 느껴졌을까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걸 알면서 끌려가는 그 마음.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하늘도 이런 우리의 마음을 아는 걸까요. 다시 올려다 본 하늘은 잿빛 구름으로 가득합니다.

김녕공회당 앞밭
김녕공회당 앞밭

빨간색, 노란색, 주황색, 초록색. 꿈과 사랑이 영그는 학교

동화 속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은 형형색색 건물과 마주칩니다. 갑자기 마법에 걸린 것처럼 주변이 모두 환해진 느낌입니다. 이곳은 1919년 3·1조천 만세운동의 영향을 받아 지역 청년들이 뜻을 모으고 함께 세운 바로 김녕초등학교입니다. 초토화작전이 한창이던 1948년 12월. 주로 서북청년으로 구성된 2연대 2대대 일부 군인들의 주둔지이기도 했습니다.

학교 행정실의 허가를 받고 학교 안의 역사관을 둘러보았습니다.

들어서자마자 부종휴 선생님과 꼬마탐험대가 저희를 맞이합니다. 만장굴을 찾아낸 주인공들이지요. 당시나 지금이나 학교는 변함없이 이곳을 지키고 있지만 2020년 학교는 만장굴 탐험의 시작점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듯 합니다.

다시 차에 오릅니다. 오늘의 마지막 답사지로 향합니다.

검은 울음을 피하던 은신처를 찾아

바당과 마당은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둡니다.

검은 모래 같은 파도는 금방이라도 돌담을 넘을 것처럼 넘실댑니다.

손 내밀면 금방이라도 바다가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그곳 삼촌네 뒤뜰에 71년 전 토벌대의 성폭력에 피해 여성들이 숨었던 궤(동굴)가 있습니다.

‘삼촌 계세요?’

‘삼촌 계세요?’

오늘도 삼촌은 안 계시나 봅니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인적은 없고 마당 가득 마늘들이 볕을 받고 누워있네요.

지금은 입구가 막혀 들어가볼 수 없지만 가로로 낮은 궤 입구는 안으로 들어가면 평평하게 조금 넓은 공간이 있다고 합니다. 광기 속에서 밤만 되면 숨을 곳을 찾아야만 했던, 많게는 50여 명 정도나 되는 사람들을 숨겨주었던 장소입니다. 목숨줄을 틀어쥐고 시시각각 조여 오는 공포로 인해 사람들은 뇌물을 바쳐야 했고, 젊은 여인은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토벌대와 원치 않는 결혼까지 해야만 했습니다.

조용히 대문을 나옵니다.

눈앞에 파도가 더 거칠게 느껴진 건 제 마음이 너무도 어지럽기 때문이겠지요.

어두운 궤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공포에 떨며 흘리던 그 눈물은 검멀레 바다가 되었나 봅니다.

김녕리 피신 궤
김녕리 피신 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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