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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재판이 진행된 고양시 사법연수원 모의법정 (2025.05.22. 촬영)
재심재판이 진행된 고양시 사법연수원 모의법정 (2025.05.22. 촬영)

4·3직권재심 재판이 고양시 사법연수원 모의법정에서 열렸다. 지난 해 2월 6일 동아대 모의법정에서 재판정을 옮겨 개정된 것에 이어 두 번째로 제주를 떠나 재판이 열린 것이다.

재심 받게 된 강택심 할아버지는 현재 92세로 거동이 매우 불편하고 잘 들리지 않는 등 건강상의 이유로 이동이 자유롭지 않으며, 6.25 전쟁에 참가하여 다친 왼쪽 다리도 절단하여 의족을 한 상태다. 강 할아버지는 4·3의 기억을 잊고자 고향을 떠나 살고 있었고, 4·3희생자 신고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4·3이 남긴 상처는 매우 컸고, 기억 또한 생생하다. 4·3특별법에 따른 직권재심 대상자가 아니라 일반 형사소송 절차에 따른 재심 절차에 따라 성사되었다. 강 할아버지의 건강상태 등을 고려하여 재심재판부와 직권재심합동수행단이 거주지와 가까운 사법연수원 모의법정에서 재판 하는 것으로 협의를 하였다.

4·3당시 강 할아버지는 애월읍 금덕리 출신으로 제주 시내에 고모집에 머물면서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아버지는 4·3 전에 돌아가신 상태였고, 누나와 다툼이 있어 평소 앙심을 품고 있던 이웃의 밀고로 어머니께서는 하귀리 자운당에서 주민들과 집단 학살되었다. 강할아버지는 순경에게 잡혀가 민애청 가입 사실을 실토하라거나, 무장대에게 협조했다는 거짓 자백을 강요하며 모진 고문과 폭행을 받아야 했다. 몇 달을 고문에 시달리다가 풀려나는 날에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형무소에서 풀려난 후에도 지독한 고문 후유증에 시달여야 했다. 왼쪽 가슴이 튀어나와 숨을 쉬기가 어려웠고, 고막이 파열되어 듣는 것도 힘이 들었다. 몸이 회복이 되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

강 할아버지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18살의 나이에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친구들과 자원입대 신청을 했다. 중부전선 전투에 참가 했는데 부대원 전부가 몰살되는 전투에서 왼쪽 다리가 거의 부서질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 다친 다리는 2003년에 결국 절단하게 된다.

군을 제대한 후에 농사도 제대로 지을 수 없어서 공무원 시험을 몇 차례 응시했는데 필기시험은 합격을 했으나 신원조회에서 매번 떨어졌다. 4·3 전과 때문이라고 강 할아버지는 생각하고 있다.

현재 6남매의 자녀를 두고 있는 강 할아버지는 막내아들이 2살이 될 때 제주를 떠나 육지생활을 하면서 4·3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자 했다. 자녀들에게는 당신의 어머니가 4·3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것은 얘기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지 않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잊은 것은 아니었다. 평생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살아왔던 삶을 이제라도 명예회복을 통해 되찾고 싶다고 한다.

강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언론에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할아버지께서 상이군경단체에서 활동한 이력과 4·3을 잊고자 희생자 신청하지 않은 이력을 보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재판에 함께한 자녀분들이 아버지와 같은 일들을 공개해서 4·3의 진실을 알리도록 해야 한다는 설득했고, 결국 공개하는 것에 동의하셨다.

2025년 4월 16일, 재심신청을 하여 4월 28일 재심결정 했던 노현미 부장판사와 재판부는 이날 재심에서 군자금 제공, 폭동 모의 등의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무혐의처분을 받은 바 있고, 고문과 폭행에 의해 이루어진 조서는 증거능력이 없으며, 범죄의 증명은 검사에게 있으나 검사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함으로 피고인 강택심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결하였다. 노현미 부장판사는 “ 당시 16세 소년이 어머니를 잃는 상황에서 고문과 폭행을 견뎌야 했던 고초가 얼마인지 알 수 없다. 오늘의 선고가 억울함을 풀 수 있는 단초가 되기 바란다.”라며 깊은 위로의 말을 전했다.

이날 재심재판에는 제주4·3희생자유족회 임원들이 재판 결과를 지켜보며 강 할아버지의 무죄 판결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재판이 끝난 후 양성주 상임부회장은 강 할아버지와 만난 자리에서 “76년 만에 무죄판결를 받은 것에 축하드리며, 건강하게 오래 살아계셔서 4·3의 진실을 알려 주시라”고 하면서 “4.3 당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죄인의 굴레에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한 모든 분들이 무죄판결을 통해 명예회복을 되어야”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관련기사] 거짓 밀고로 16살에 억울한 누명, 고향 제주 떠난 92세 할아버지

제주의소리, 이동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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