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옥(박사) 생가
유적지 개요
조병옥은 미군정 시기 경무부장 직을 맡으며 제주4·3 발발 전부터 제주도민의 원성을 샀던 인물이다. 미군정은 1947년 제주 3.10총파업의 사후처리 문제를 조병옥에게 맡겼고, 이에 그는 진상파악을 위해 3월 14일 제주도에 도착 즉시 포고문을 발표했다. 포고문에는 경찰의 발포로 빚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 경찰총수로서 해명하거 나 유감의 뜻을 표현한 내용은 없었다. 오히려 비록 간접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3 1 사건을 하나의 ‘폭동’으로 규정했다. 그는 다음날 전남 전북 경찰청에서 2백여 명이 급파되는 등 응원경찰이 속속 증원되었다 .
당시 제주도청을 방문하여 파업 중인 공무원들에게 파업 중지를 촉구하였는데, 당시 현장에 있던 공무원 출신은, "조병옥 경무부장이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면서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싹 쓸어버릴 수 있다는 놀라운 내용의 연설을 했다"라고 증언 했다. 조 경무부장은 15일 파업 주모자들을 검거하라는 명령을 하달했으며, 3월 20일, '3.1사건 진상조사 담화'에서 "제1구경찰서에서 발포한 행위는 정당방위이며, 도립병원 앞에서의 발포행위는 무사려한 행위로 인정한다"라고 발표했다. 4월 1일에는 파업에 가담한 제주 경찰관 66명에 대해 징계 및 파면을 발표했다.
제주4·3 발발 직후에는 사태 진압요원으로 서북청년회 단원 5백 명을 급파했다. 1948년 4월 14일, 제주를 방문하여 「도민에 고함」이라는 제목의 선무문(宣撫文)을 발표하여 제주 4·3 무장봉기를 남로당이 주도한 ‘무모한 폭동’으로 못 박고, 도민들에게 폭동에 가담하지 말고 귀순할 것을 종용했고, 이에 반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강경 진압을 예고했다. 16일에는 5.10 총선거를 앞두고 마을 치안 유지와 선거 사무소 경비를 목적으로 민간인 방위 조직인 향보단(鄕保團)을 결성을 발표했다.
4·3의 위력이 쉽게 잦아들지 않자, 5월 19일 각 경찰관구에서 차출한 응원경찰 450명과 수도경찰청 형사대를 제주도로 보냈고, 이후에서 수습 명의 응원경찰을 제주도로 보냈다. 5월 28일 조병옥은 제주 치안상황을 시찰하기 위해 제주도를 방문하였고, 6월 23일 담화를 발표하며 폭동 발발의 원인을 경찰관의 비민주적 과오에서 찾으려는 것은 사고와 판단의 착오라고 주장하면서 민심을 악화시켰다.
천안시(당시 천안군)가 조병옥 박사의 생애와 정신을 기리고 후세에 길이 본받을 역사의 장으로 삼고자 1995년 생가를 복원하고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울 수 없다"를 제목으로 하는 기념비를 세웠다. 보훈청에서도 '유석 조병옥 생가'라는 안내판을 세워 한글과 영문으로 그의 업적을 알리고 있다. 천안시는 '역사문화둘레길'을 조성하여 주요 관광지의 하나로 조병옥 박사 생가지를 소개하며 안내판을 세웠다.
2025년 11월 9일, 민죽문제연구소 충남지역위원회 및 천안지회,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는 <조병옥의 역사적 과오를 기록하다>라는 안내판을 설치했다. 이를 통해 조병옥 생가 방문자들이 조병옥의 '공'과 '과'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참고문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4·3전국화를위한 도외 4·3기억의 공간 종합조사 보고서>, 2022, 119-121쪽.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서울:도서출판 선인, 2003.
유적지 정보
- category지역 구분 전국
- gps_fixed유적지 위도 36.751599
- gps_fixed유적지 경도 127.314921
- pin_drop유적지 주소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길 249
- directions_walk찾아가는 방법 병천 버스정류장에서 430번 버스(가좌리행)를 탑승하여 '조병옥박사생가'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 1분
유적지 사진
조병옥(박사) 생가, '조병옥의 역사적 과오를 기록하다' 안내판 (2025.11.17. 촬영)
조병옥(박사) 생가 안내판, 보훈처 (2022.9.27. 촬영)
조병옥(박사) 생가 건립문, 천안시 (2022.9.27. 촬영)
조병옥(박사) 생가 (2022.9.27.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