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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현장 개요

제주4·3연구소에 따르면, 도련1구는 당시 공회당과 수운교 건물이 있던 곳이 그 부근에서 제일 높다고 하여 그곳을 중심으로 성담을 쌓았다. 유성문(1925년생, 남)의 증언에 따르면 4·3성 주변에 숨을 곳이 없도록 성 근처의 나무까지도 전부 잘랐다.

"나무 속에 곱거나(숨거나) 담이 높아도 장애물이 되거든. 그래 산도 멘짝, 바다도 멘짝, 전부 밋밋허게 만들었어. 여기서 보면 삼양까지 쫙 보이게 헌거야. 그때 삼양 사람들 걷는 것도 봐졌어. '도치카' 허면 성을 말하거든. 우린 도치카 쌓고, 총부리 대여놓곡 경계서멍 싸웠다. 여기만 쌓은 게 아니야. 도련2구, 봉개, 용강, 회천... 저 중산간 마을 전부 다 성을 쌓았지. 경찰관들이 주둔허명 경비해주고, 보초 서주고. 또 배급도 주고. 깡냉이, 우유가루를 자꾸 줬어. (중략) 그때 도련이 재건될 적에 보민, 밑에 간 사름은 거의 대부분 올라왔어. 며칠 동안에 성을 쌓으라고 했지. 우린 아마 한 달 동안 출퇴근했어. 아침에 점심 싸가지고 와서 돌을 쌓고 하다가 내려가고. 그런 다음은 성이 완성돼가니까 집을 지으라고 해서 나무영, 띠풀이영 끊어다가 집을 짓고 해서 올라온 거지. 1949년 1월달부터 시작해서 2월 말쯤? 3월 돼서 올라왔을 꺼야. 참 힘들었어." - 고중휴(1937년생, 남)님 증언.

삼양동지에 따르면, 도련1구의 4·3성은 직사각형 형태이고, 다른 마을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4·3성 안에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성이 크지 않았다고 한다.

1948년 12월 소개령이 떨어지자 인근 마을인 삼양과 화북으로 피난을 했다가 1949년 늦은 봄부터 성을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도련1구 4·3성은 도련일동 1649번지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약 150m, 여기서 남쪽을 향해 직각으로 꺾어 약 200m 쌓다가 1621번지에서 동쪽을 항해 150여 미터, 다시 북쪽을 향해 200여 미터를 쌓아 1649번지에서 마무리되었다.

지금은 주공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는 부지 외각이 4•3성안에 해당한다. 도련1구 4·3성은 현재 아주 일부만 남아있다. 그러나 이곳은 개별적인 안내판이 있거나 보존을 위한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방치되어 있다. 가능하다면 남은 성곽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도련일동 1611번지의 거주자와 협의하여 보존상태를 추가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출처
삼양동지편찬위원회, <삼양동지>, 제주:태화인쇄소, 2008, 169쪽.
제주특별자치도, 제주4·3연구소, <제주4·3유적1:제주시편>, 2021 , 제주:도서출판 각, 260쪽.
제주특별자치도, 제주 4·3기념사업위원회, <삼양동 4·3유적지 실태조사 및 자원활용 방안>, 2023, 29-30쪽.

역사현장 정보

  • 지역 구분 제주시권
  • 위도 33.507921
  • 경도 126.590138
  •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련1길 8
  • 찾아가는 방법 도련일동 '이좋은마트(e-좋은마트)' 건물 우측 넝쿨로 덮여 있는 담장

역사현장 사진

도련1구 4•3성을 조사하고 있는 조사연구자들(2023.06.29. 촬영)

도련1구 4•3성을 조사하고 있는 조사연구자들(2023.06.29촬영)

도련1구 4•3성(:카카오맵 로드뷰 2016.03 촬영버전 캡쳐)

도련1구 4•3성(:카카오맵 로드뷰 2016.03 촬영버전 캡쳐)

1967년 도련1구 4•3성의 흔적(제주특별자치도 공간포털 항공영상)

1967년 도련1구 4•3성의 흔적(제주특별자치도 공간포털 항공영상)

e좋은마트 우측 덤불에 가려진 도련1구 4•3성의 일부(2022.12. 촬영)

e좋은마트 우측 덤불에 가려진 도련1구 4•3성의 일부(2022.12. 촬영)

도련1구 4•3성의 흔적이 남은 곳의 위치(카카오맵, 2023.12.캡쳐)

도련1구 4•3성의 흔적이 남은 곳의 위치(카카오맵, 2023.12.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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